[데스크 시각] 죽어 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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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경 기자
백민경 기자
수정 2025-09-22 00:21
입력 2025-09-21 23:55

원인은 쉬쉬하는 청소년 자살
지역, 학교명만 부각되지 않게
심리부검 강화 등 종합대책을

지난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다. 그날 만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청소년 자살 보고서를 언급하며 고통을 토로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상황에 따라 경위 보고서가 올라옵니다. 아이가 어떤 동선을 따라, 어떤 수단을 사용해, 어떻게 목숨을 끊었는지, 어떤 학교 학생인지 등이 적혀 있는데 그걸 읽을 때마다 정말 괴로워서 견디기 어렵습니다.”

보고서에는 단지 자살의 방법과 결과만 남는다. 정작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이 그 선택으로 내몰았는지는 담겨 있지 않다.

청소년 자살은 우리 사회가 짊어진 가장 아픈 그림자다. 자살은 12년째 10대 사망 원인 1위다. 자살 학생 수는 2020년 148명, 2021년 197명, 2022년 194명, 2023년 214명, 2024년 221명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100명을 넘었다.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이들의 얼굴이 이 숫자 뒤에 있다.

남겨진 가족에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온다. 윤순옥(64)씨는 고등학생 때 언니를 자살로 떠나보낸 뒤 아버지마저 같은 선택을 했다. 47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숨이 막히고 몸이 굳어 버린 그날” 속에서 산다고 했다. 사회적 낙인과 편견,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유가족을 더욱 옥죄었다. 그래서 자살 유가족이 또다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매년 아이를 잃는 비극이 되풀이되지만, 문제는 원인을 규명하는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자살 심리부검’ 제도는 성인을 대상으로도 개인정보 보호 이유와 협조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면 더 큰 장벽이 가로막는다.

자살을 줄이려면 원인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사회가 종합적으로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청소년의 경우 대부분 어느 학교 학생인지를 묻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공개적으로 원인을 찾기가 힘들다. 자칫 그 지역과 학교만 부각될 수 있어서다.

부모와 교사, 친구들도 상처와 죄책감 속에 침묵하곤 한다. 고인의 행적을 복기하고 주변인의 증언을 모아 원인을 분석해야 하는 과정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으니, 청소년 자살은 ‘개인적 불행’으로 치부된 채 사회적 대응도 뒷전으로 밀려난다.

상당수 학교 역시 학생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추가 피해 예방’이라는 명분으로 사건을 서둘러 정리하는 데 집중한다. 경찰은 수사 결과를 단순 변사로 처리하고, 학교는 교육청에 짧은 보고서를 제출하며, 지자체는 통계 한 줄을 더한다.

이 과정에서 한 아이의 죽음은 사회적 경고음으로 기능하지 못한 채 통계 속 숫자로 사라진다.

그러니 사후 심리부검이나 체계적 분석도 쉽지 않다. 청소년 자살의 구조적 요인인 입시 압박, 학교 폭력, 가정불화, 정신건강 서비스 부족, 미디어 영향 등은 단편적으로 드러날 뿐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심리부검 절차와 제도를 청소년에 맞게 보완하고, 유가족 지원과 익명 보장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도 검토할 만하다. 12년째 청소년 사망 1위인 자살의 원인에 대한 정밀한 대책을 찾지 못하는 것에는 어른의 책임이 가장 크다.

사회는 청소년의 죽음을 개인의 비극으로만 남겨서는 안 된다.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같은 죽음을 반복하게 된다.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그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다.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 살면서, 있는 아이들도 지키지 못하는 데 미래가 밝을 리 없다.

백민경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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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경 사회부장
백민경 사회부장
2025-09-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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