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매체 “젤렌스키, 푸틴식 권위주의…민주주의 위협” 이례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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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희 기자
권윤희 기자
수정 2025-07-15 22:57
입력 2025-07-15 22:33

우크라 영문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 사설
“반부패 운동가 비탈리 샤부닌 표적 수사”
“정의 구현 아닌 적대자 탄압…법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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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회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7.10 로마 AF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회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7.10 로마 AFP 연합뉴스


전쟁 소식을 전 세계로 타전하는 우크라이나 주요 영문 매체가 이례적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14일(현지시간)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지금,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는 러시아식 후퇴 위기에 처해 있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민주적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매체는 “러시아에 맞서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로 변해서는 안 된다”라며 “우크라이나의 주요 독립 영문 매체로서 우리는 이러한 위협을 인정하고 폭로할 의무가 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민주적 제도를 점차 우회하며 법치를 파괴하고 있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매체는 특히 우크라이나 최고의 반부패 운동가 비탈리 샤부닌 반부패행동센터(ACAC) 소장에 관한 사법당국의 수사에 주목했다.

우크라 반부패 활동가 샤부닌 돌연 기소
무기조달 비리 지적…젤렌스키와 대립각
샤부닌 “전쟁 이용해 푸틴식 권위주의”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사국(SBI)은 11일 샤부닌 소장의 키이우 자택과 하르키우 군 초소를 압수수색하고, 병역 회피 및 사기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그가 병역을 회피해놓고 월 5만 흐리우냐(약 1200달러)의 군사 수당을 받았다는 게 사법당국의 지적이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사법당국이 샤부닌 소장을 표적 수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샤부닌 소장은 전쟁 초기 군에 자원입대했는데, 복무 중에도 반부패 활동을 계속한 탓에 젤렌스키 정권의 눈엣가시됐다고 매체는 설명했다. 사법당국의 주요 관심사가 샤부닌 소장의 휴대전화인 점은 이번 수사가 ‘정의 구현’이 아닌 ‘적대자 탄압’을 목표로 함을 명백히 드러낸다고 했다.

실제로 샤부닌 소장은 10년 넘게 우크라이나 시민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활동해왔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2019년 대선 당시 샤부닌 소장과 공개 회동하고 부패 척결의 필요성을 논의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빠르게 파탄 났고, 이후로도 샤부닌 소장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엇박자를 내며 그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의 침공 후에는 우크라이나 국방부의 무기조달 비리를 지속 제기했다.

기소 후 샤부닌 소장은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젤렌스키는 전쟁을 이용하여 부패한 권위주의로 향하는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라고 한탄했다.

“반부패 활동을 적으로…지도부 생존 더 중시”
“젤렌스키 대통령 묵인 또는 적극적 허가 의심”
“안보·국방위 초법적 도구 전락…정적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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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사국(SBI)이 반부패 운동가 비탈리 샤부닌 반부패행동센터(ACAC) 소장의 병역 회피 및 사기 혐의와 관련해 하르키우에 있는 샤부닌 소장의 군 초소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2025.7.11 SBI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사국(SBI)이 반부패 운동가 비탈리 샤부닌 반부패행동센터(ACAC) 소장의 병역 회피 및 사기 혐의와 관련해 하르키우에 있는 샤부닌 소장의 군 초소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2025.7.11 SBI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이처럼 정부의 비효율성과 부패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행위가 ‘국가의 적’으로 간주되는 경우는 지도부가 국가의 이익보다 자신의 생존과 안락을 더 중시할 경우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국가에서 가장 ‘악명’ 높은 반부패 운동가에 대한 탄압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묵인, 또는 적극적인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러한 (탄압) 행위는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적 미래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몰락하고 사회가 분열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적들에게 귀중한 선물”이라고 지적했다.

매체는 그러면서 “만약 젤렌스키 대통령이 샤부닌에 대한 탄압을 승인한 것이라면, 너무 늦기 전에 그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또한 “본인이 승인한 것이 아니라면, 탄압을 주도한 인물이 누구인지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 인물은 우크라이나의 국익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샤부닌 소장 표적 수사 외에 국가안보·국방위원회(NSDC)의 무기화 역시 민주주의의 퇴보를 드러낸다고 일침했다.

NSDC가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호가 아닌, 젤렌스키 정권의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초법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매체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주요 정적이었던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에 대한 제재를 NSDC 무기화의 단적인 예로 들었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포로셴코의 행보가 논란의 여지가 있고 의심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는 자의적인 제재가 아니라 정식 사법 절차를 통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짚었다.

“전쟁 핑계로 민주주의 훼손·권력 남용 안 돼”
“G7은 왜 침묵하나”…선택적 정의 비판도
“권위주의 국가 위해 피 흘리는 것 아냐”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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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재회한 우크라이나군 포로
가족과 재회한 우크라이나군 포로 러시아와의 포로 교환으로 풀려난 우크라이나 군인이 1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체르느히우에 도착해 가족과 재회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지난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합의된 내용에 따라 포로를 교환했으나 그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2025.6.20 체르니히우 AP 뉴시스


매체는 그러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제적으로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무기와 지원을 확보하는 데 효과를 입증했지만, 국내적으로도 민주주의 제도 수호라는 중요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침묵하는 G7’에 대한 비판도 덧붙였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과거 우크라이나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감시하며 개혁을 환영하고 언론 탄압과 같은 반(反)민주적 조치를 비판하곤 했던 외교 공동체, 특히 G7(주요 7개국)이 샤부닌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라고 했다.

매체는 “전쟁이 우크라이나 민주주의를 훼손하거나 권력 남용을 지적하지 않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선택적 정의나 정적 탄압은, 우크라이나가 지향하고 있는 나라와 양립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썼다.

우리는 늘 이 전쟁이 단지 영토 문제 이상의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 전쟁은 두 세계, 두 개의 정반대 가치 체계 간의 충돌’이라는 우리 사설의 문장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연설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이 ‘가치 체계’는 결코 공허한 말이 아니다. 적어도 전장에서 피 흘리는 우크라이나 수호자들에게는 말이다. 그들이 피 흘리며 싸우는 것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우크라이나를 위해서이지, 권위주의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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