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지하철 ‘행패’ 노인, 지명수배자였다…상대는 일약 ‘스타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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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수정 2025-10-09 14:00
입력 2025-10-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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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베이 지하철에서 노인이 우선석에 앉아 있는 승객을 가방으로 때리자(왼쪽) 승객이 할머니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스레드 캡처
대만 타이베이 지하철에서 노인이 우선석에 앉아 있는 승객을 가방으로 때리자(왼쪽) 승객이 할머니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스레드 캡처


대만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를 요구하며 시비를 걸다 발길질을 당한 노인이 알고 보니 지명수배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비를 거는 노인을 발로 찬 상대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가 노인의 정체가 드러나자 여론이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대만 매체 ET투데이 등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달 29일 오후 타이베이 지하철에서 벌어졌다.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사건 당시 영상을 보면 백발의 여성은 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 승객을 가방으로 때렸다. 당시 지하철 객차에는 젊은 승객이 앉은 곳 외에도 빈 좌석이 여러 개 있었다.

나중에 이 노인이 항변한 내용에 따르면 젊은 승객은 우선석(약자 우대석)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젊은 승객은 노인의 시비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고 느꼈는지 쇼핑백을 옆 사람에 맡기더니 다시 한번 가방으로 때리는 노인을 발로 막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이 메고 있던 가방을 세게 걷어찼다.

젊은 승객의 발길질이 가방에 막혀 노인의 몸에 직접 닿진 않았지만, 워낙 세게 걷어차였던지 노인은 뒤로 밀려나 건너편 빈 좌석에 내동댕이쳐지듯 쓰러졌다.

노인은 곧 다시 일어나 젊은 승객을 향해 “경찰에 신고하고 싶다”고 말했으나 자리에 다시 앉은 승객은 “한번 더 해보세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노인은 주변에 “우선석에 앉고 싶었다. 난 짐이 많아서 우선석 옆에 걸어두고 싶었다”고 항변했다.

그러자 노인을 발로 찬 승객은 “짐을 놓고 싶었으면 차를 끌고 나왔어야지”라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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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베이 지하철에서 노인이 우선석에 앉아 있는 승객을 가방으로 때리자 승객이 할머니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스레드 캡처
대만 타이베이 지하철에서 노인이 우선석에 앉아 있는 승객을 가방으로 때리자 승객이 할머니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스레드 캡처


젊은 승객은 묶은 머리에 원피스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고 영상만으로는 성별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걷어차인 뒤 이 승객을 남성으로 여겼는지 “아, 남자였구만. 이제야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네”라고 소리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영상이 확산하자 현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설왕설래가 오갔다. 상당수가 노인을 비난했는데, 이들은 당시 객차에 빈자리가 많았는데도 시비를 걸고 가방으로 다른 승객을 때린 점을 지적했다.

또 이 노인이 처음엔 젊은 승객을 여성이라 생각하고 시비를 건 거냐고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그럼 그가 남자인 줄 알았을 땐 시비를 걸지 않기로 한 거냐? 여자만 노리는 것 같네”라고 의문을 표했다.

반면 노인이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잘못했지만, 그렇다고 발로 걷어찬 행동이 적절한 것도 아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건을 인지한 타이베이 지하철경찰대는 내사에 착수해 두 사람의 신원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사건 이튿날인 지난 1일 경찰은 편의점에서 영상 속 노인을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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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지하철에서 시비를 거는 영상 속 당사자인 청씨가 절도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출두하지 않은 혐의로 체포영장이 내려졌던 지명수배자인 사실이 드러나 지난 1일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TVBS 뉴스 캡처
대만 지하철에서 시비를 거는 영상 속 당사자인 청씨가 절도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출두하지 않은 혐의로 체포영장이 내려졌던 지명수배자인 사실이 드러나 지난 1일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TVBS 뉴스 캡처


노인이 체포된 것은 지하철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미 지명수배된 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노인의 성은 ‘청’으로 알려졌는데, 청씨는 이미 여러 건의 절도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도 양형 관련 선고 공판에 출두하지 않아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그는 체포 당시 “이건 다 가짜야! 증거를 내놔! 살려줘!”라고 소리치고 저항하며 연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경찰서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고맙습니다. 가능한 한 사진을 많이 찍어주세요!”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청씨는 최소 네 차례에 걸쳐 여러 물건을 훔친 혐의를 받았다. 그는 한번 물건을 훔친 가게를 다시 찾아가 또 절도를 저질렀는데, 체포 당시 그는 훔친 물건이 “과학 연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도둑질을 합리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돈을 벌 시간이 없어 물건값을 지불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비를 거는 청씨를 발로 걷어찬 젊은 승객의 정체도 밝혀졌다.

매체에 따르면 그는 장모씨로 국립대만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여성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영상에서 옆 사람에게 맡긴 쇼핑백에는 그날 구입한 숄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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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지하철에서 시비를 거는 노인을 향해 발길질로 맞대응한 승객 장모씨. 그는 국립대만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여성으로 전해졌다. 장씨 인스타그램 캡처
대만 지하철에서 시비를 거는 노인을 향해 발길질로 맞대응한 승객 장모씨. 그는 국립대만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여성으로 전해졌다. 장씨 인스타그램 캡처


노인의 정체가 지명수배범인 것으로 드러난 데다 노인에게 비슷한 피해를 겪었다는 경험담이 쏟아지자 여론은 급반전했다. 청씨의 시비와 행패에도 당하기만 했는데 장씨가 제대로 맞서줘서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영상이 공개됐을 때 한 누리꾼은 “같은 가방, 같은 우산.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나도 저 할머니를 만났던 것 같다. 당시 임신 20주차여서 누군가 자리를 양보해줬는데 저 할머니가 우산으로 날 때리면서 ‘뚱뚱한 거냐, 임신한 거냐. 잘 모르겠는데’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노인의 정체가 밝혀진 뒤 “몇 년 전 같은 노선에서 저 노인이 날 울렸다. 당시 나는 고열에 심한 생리통을 앓고 있었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그런데 노인이 저에게 욕을 하고 자리에서 쫓아냈다”면서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 이제라도 털어놓을 수 있게 도와줘서 (장씨에게)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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