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생각보다 다양한 표정 가진 튀르키예 케밥 세계
수정 2025-10-15 01:20
입력 2025-10-15 01:01

흔히 케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수직으로 세워 올린 꼬챙이에 층층이 쌓여 먹음직스럽게 구워지며 돌아가는 고기, 호쾌하게 긴 칼로 고기를 썰어내는 튀르키예 요리사, 세계 어디를 가든 값싸면서도 푸짐해 든든한 한 끼. 우리에게 이국적인 패스트푸드로 인식되고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케밥이란 이름은 꼬챙이에 구운 고기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의 상식과 달리 케밥은 특정한 음식 이름이 아니라 ‘열을 이용해 조리한 고기요리 전부’를 부르는 말이다. 꼬치에 꿰어 굽는 형태가 대표적이지만 팬이나 오븐, 항아리를 이용해 익히는 방식도 모두 케밥의 범주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김치’라고 하면 붉은 배추김치가 대표 이미지일 테지만 한국에는 다양한 색깔과 재료로 만든 발효음식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김치라고 부른다. 튀르키예에서 케밥을 먹는다는 건 고기를 먹으러 간다는 말과 동의어다.
가장 유명한 케밥은 도네르 케밥이다. 앞서 케밥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의 바로 그 케밥이다. 꼬챙이에 꿰어 익히는 방식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진 기술이지만, 이를 수직으로 세워 구울 생각을 했다는 데 튀르키예인들은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음식의 유래가 늘 그렇듯 명확하지 않다. 튀르키예 부르사 지역의 이스켄데르 에펜디가 19세기 중엽 수평으로 굽던 꼬치를 세워 굽기 시작했다는 전승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부는 오스만 제국 이전의 중앙아시아 유목민 문화 속에 이미 회전 구이 전통이 있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19세기 오스만 제국 도시화 과정에서 수직 로티세리가 조리 효율성을 이유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는 견해가 가장 현실적이다.
누가 왜 누워 있던 꼬치를 세워 굽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방식이 상당히 영리한 발상이라는 건 알 수 있다. 수평으로 고기를 구우면 육즙과 지방이 빠져나와 쉽게 마르게 되는 데 비해 수직으로 굽게 되면 지방과 육즙이 아래에 있는 고기로 타고 흘러 촉촉함을 상대적으로 더 오래 유지한다. 익은 겉면의 고기를 잘라내면 계속해서 회전하며 표면이 익으니 꼬치를 여러 번 바꿔 끼워 구울 필요도 없다. 조리 효율성 면에서 여러모로 편리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가게 앞에서 돌아가고 있는 거대한 고기 꼬챙이를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군침을 흘리게 된다. 손님을 끌어들이는 매력, 요즘 말로 치면 인스타그래머블한 비주얼도 큰 역할을 한다.

보통 유목민의 전통에 따라 양고기가 일반적이지만 튀르키예 현지에서는 소고기나 닭고기를 사용하거나 두 고기를 섞어 굽는다. 돼지고기가 금기인 이슬람 지역이라 돼지로 만든 케밥은 보기 어렵다. 돼지고기 도네르 케밥은 오히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멕시코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30년대 튀르키예 이민자들이 멕시코 현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로 도네르 케밥을 만들었는데, 오늘날 타코 알 파스토르로 불린다.
수직으로 굽는 방식 외에도 전통 수평 꼬치구이 방식으로 만드는 케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건 양고기나 소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꼬치에 꿰어 숯불 위에서 굽는 시시 케밥이다. 다진 고기를 꼬치에 붙여 구운 건 키이마 케밥이라 불린다. 이스탄불 케밥 집들이 내건 메뉴 중 가장 많이 보이는 아다나 케밥이 대표적인 키이마 계열이다.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 지방에서 유래한 대표적인 다진 양고기 꼬치구이로, 튀르키예 케밥 문화의 정수를 보여 주는 요리라 평가받는다. 양고기를 곱게 다져 붉은 고추와 향신료를 넣어 굽는데 매콤한 맛이 특징이다. 멀리 떨어진 인도네시아의 사테와도 유사한 특성을 가진다.
정작 튀르키예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외국인이 이스탄불에 오면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으로는 고등어 케밥이 유명하다. 발릭 에크멕으로 불리는데 직역하면 생선 샌드위치다. 케밥이 육고기 요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등어 케밥은 전통 케밥 문화의 계보에 속하지는 않는다. 현대에 와 패스트푸드로 만들어진 요리로 우리의 떡볶이나 라면 같은 위치라고 보면 쉽다.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게 되면서 튀르키예 요리로 편입된 사례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지만 식욕을 자극하는 생선 굽는 냄새와 보기 좋게 익고 있는 고등어를 목격하면 먹지 않고는 쉽게 지나칠 수 없다는 점에서 도네르 케밥과 비슷한 매력을 갖고 있다.
이스탄불 거리를 걷다가 손쉽게 케밥을 먹고 싶다면 뒤룸이란 글자에 주목하면 된다. 종종 토르티야로 오해받는 튀르키예식 납작빵인 라바시로 케밥과 재료들을 먹기 좋게 말아서 만드는 랩 스타일 스트리트 푸드를 뒤룸 케밥이라고 부른다. 도네르든 시시든 아다나든 뒤룸으로 달라고 하면 모두 라바시에 싸서 나온다. 멕시코의 부리토와 비슷하지만 칼칼한 고추양념이나 진한 소스 같은 건 없다. 구운 고기와 채소 그리고 간단한 양념과 라바시가 전부인, 일종의 쌈 요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스탄불을 이미 경험했거나 혹은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 불행한 소식이 있다. 최근 악화된 튀르키예 경제 상황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어마어마해졌다는 점이다. 값싼 케밥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건 이제 옛말이 됐다. 케밥이 그립고 궁금하다면 오히려 튀르키예 밖에서 맛보는 편이 여러모로 나은 요즘이다.
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2025-10-1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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